2005년 9월 11일 일요일

경주 최 부잣집


경주 최 부잣집
좋은 가문을 명문이라고 하 듯이, 좋은 부자를 명부(名富)라고 합니다. 이 세대에 우리는 이러한 명부 하면 누가 생각이 되십니까? 빌게이츠와 같은 인물일까요?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명부는 조선 시대에 있었습니다. 한국의 5백 년 내력의 명문가의 이야기에 대해 책을 쓴 조 용헌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그 집이 바로 경주에 있는 최(崔) 부잣집이라고 합니다. 최 부잣집 은 9대 동안 진사를 지내고 12대 동안 만석을 한 집안으로서 조선 팔도에 널리 알려진 집이었습니다. 만석꾼이야 찾아보면 많지만 12대를 연이어 만석을 한 집안은 아마도 조선 팔도에 이 집뿐일 것입니다. 3대도 어려운데 어떻게 12대를 이어갔단 말인가? 그럴 수 있게 하였던 경륜과 철학이 반드시 있었을 텐데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명문이 될 수 있었던 철학과 가훈이 내려왔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진사(進士) 이상은 하지 마라.”라는 원칙입니다. 한마디로 정쟁(政爭)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이지요. 조선 시대 진사라는 신분은 초시(初試) 합격자를 가리키는데, 진사라고 하는 것은 벼슬이라기 보다는 양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한도의 자격 요건에 해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 씨 집안은 진사를 넘어서는 벼슬은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조선 시대는 당쟁이 심한 사회였으므로 벼슬이 높아질수록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당쟁에 휩쓸리기 쉬웠습니다. 일반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자리 할 기회가 있다면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우선 당장하고 보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집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종착역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끝까지 꿰뚫어 본 데서 나온 지혜로움을 볼 수있습니다.
둘째,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마라.” 라는 원칙입니다. 만석은 쌀 1만 가마니에 해당하는 재산인데, 이 이상은 더 재산을 늘리지 마라는 이야기이지요. 돈이라는 것은 가속도가 붙는 성질이 있습니다. 처음 어느 궤도에 오르기까지가 어렵지 그 궤도를 넘어서는 재산을 모으면 그 다음부터는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상황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최 부잣집은 만석 이상 불가의 원칙을 따라 그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환원 방식은 소작료를 낮추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 주변 소작인들은 앞을 다투어 최 부잣집의 논이 늘어나기를 원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이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살아야 내가 산다”는 상생(相生)과 공생의 원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이런 부의 미덕이 있다면 얼마나 살 맛이 나겠습니까?
셋째, “흉년에는 논을 사지 마라.”라는 원칙입니다. 조선 시대의 경우 흉년이 들어서 아사 직전의 상황에 직면하던 때에는 쌀 한말에 논 한 마지기를 헐값에 넘기기도 하였답니다. 우선 당장 먹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까 논 값을 제대로 따질 겨를이 있을 수 없지요. 쌀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부자는 바로 이러한 기아 상태의 흉년이야말로 없는 사람들의 논을 헐값으로 사들여서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상극(相剋)의 방정식이지요. 그러나 최 부자는 이러한 상극의 방정식을 금했습니다. 이는 양반이 할 처신이 아니요, 가진 사람이 해서는 안될 행동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신사도(gentlemen ship)이며, 스포츠에서 넘어진 선수에게 공격을 하기 보다는 일으켜 세워주는 페어플레이 정신입니다.
넷째,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과객은 길 가던 손님을 말합니다. 최 부잣집의 1년 소작 수입이 쌀3천 석 정도였는데, 이 가운데 1천 석은 가게용으로 쓰고, 1천 석은 과객 접대하는데 사용하였고, 나머지 1천 석은 주변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데 썼다고 합니다. 1년에 1천 석이면 당시의 경제 규모로 환산해 보면 엄청난 액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 부잣집에 과객이 많이 머무를 때는 그 숫자가 100명이 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이상을 넘어설 때는 최 부잣집 주변에 살고 있던 초가(노비들이 사는 집)로 과객들을 분산 수용하였는데. 이때 과객들을 접대하는 대가로 최 부잣집 주변에 사는 노비들은 소작료를 면제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실천한 증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 부잣집은 그러한 명문가 중의 하나로서 돈이 있으되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여유는 있으되 그러한 여유를 남에게 나눌 줄도 아는 마음이 있기에 진정한 명문가로 인정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부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최 부자와 같은 존경 받는 인물이 되십시오.

내 아이에게 "부(富)"를 가르치자!

1.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격언이 있지만, 자신의 아이들의 부자가 되면 싫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이들이 성공하길 원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의 엄청난 학교 교육에만 열을 올린다. 교육열만큼 자신의 아이가 부자가 되길 원하면 “돈”을...